20220521(토) 오늘의 클럽에반스 공연 : 오영준Quartet
 
이선지
SUMMER ENDS
2010.05.27
포니캐년코리아
이선지
SUMMER ENDS
01. Summer Ends   
02. Day Dream   
03. At The Airport   
04. Fallen Sun 
05. Nefertiti 
06. Improvisation
07. Paris Air 500cc   
08. Ruda's Luna 
09. Blossom
세상에 대한 이해를 깊은 서정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 이선지
여름 날 모진 폭풍우를 이겨낸  꽃 같은 앨범 <SUMMER ENDS>


그 여름의 끝 <SUMMER ENDS>

 선명한 자의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립해가는 재즈피아니스트 이선지는 2009년 데뷔 앨범 <The Swimmer>로 강한 개성과 시각적인 이미지를 음악으로 구현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데뷔 앨범 이후 매진한 작업의 결실이 "여름 날 모진 폭풍우를 이겨낸  꽃"으로 돌아왔다. 한 가지 색깔로 규정될 수 없는 그 꽃들은 내면의 치열한 고민 속에서 수사적 현란함이 없는 고른 정서로 피어났다.

 그 고요한 서정미 속에서 예상을 빗나간 이선지의 화법은 피아니스트 이전에 작곡가로서 많은 창작의 노고를 보여준다. Classical 스트링 편곡에서 Rock의 드럼연주까지 한 가지 색깔로 규정될 수 없는 앨범 <SUMMER ENDS>을 낳았다. Nefertiti를 제외하고, 모든 트랙이 이선지의 창작곡으로 본인이 직접 작곡, 편곡, 프로듀스 하였다. 이선지 특유의 창조적인 매력은 여전하지만, 재즈에서 접하기 힘든 피아노 트리오에 첼로가 편성되어 정서적인 감동을 전해준다.
 
 앨범 <SUMMER ENDS>는 재즈라는 음악적 장치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깊고 근원적이며 뛰어난 서정을 통해 새롭게 펼쳐 보여준다. 그녀의 음악은 결국 자신을 지키며,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하나가 되었다.



1. Summer Ends
여름의 끝을 관조하며 쓴 곡. 역동적인 리듬위에 피아노 멜로디와 첼로라인의 조화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엔딩부분의 앙상블에도 귀를 늦추지 말 것.

2. At the airport
서정적인 멜로디에 뒤따라 나오는 락 그루브가 기분 좋게 사람을 흥분시킨다. 마치 공항에 있는 것처럼.

3. Day dream
일장춘몽을 노래한 조용한 룸바 그루브 위에 얹어진 멜로디와 솔로라인들.
직접적으로 슬픔을 드러내기 보다는 담담히 은유적으로 슬픔을 껴안은 듯,
아름답고 낭만적인 곡.

4. Fallen Sun
무거운 록 그루브 위에 얹힌 반복적인 멜로디라인이 무한 반복해서 듣고 싶은 강한 중독성을 가지며, 클라이맥스로 치 닫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5. Nefertiti
평소 너무나 좋아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곡(nefertiti는 이집트여신이란 뜻)을 reharmonization하여 피아노솔로로 연주하였다.

6. Improvisation
Paris air 500 cc의 인트로에 해당하는 곡으로, 곡이 시작되기 전의 느낌을 프리로 연주하였다.

7. Paris Air 500 cc
초현실주의 화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그대로 제목으로 인용하였다.
파리라는 도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표현한 곡.
베이스와 첼로의 앙상블이 제목만큼이나 독특하다.

8. Ruda’s Luna
첫딸 루다에게 바치는 곡으로 라틴느낌의 낭만적인 곡.

9. Blossom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쓴 곡.
떨어지는 꽃잎, 사라져가는 젊음의 순간을 표현한 아름다운 피아노 트리오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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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성적인 저녁에 대한 기억처럼  - 김연수


우리가 이 음반을 듣게 되면 제일 먼저 보게 될 것은 어떤 내성적인 저녁의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한 서너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해질 녘의 풍경들. 먼저 말을 걸기만을 기다리는 서먹서먹한 공기. 거기는 서쪽을 바라보는 어떤 뜰이겠고, 뜰 안의 꽃은 피었으되 아직 완전히 만개하지는 않은 봄이리라. 그처럼 어스름이 완전히 내리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은 초조하지는 않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저녁. 아직 말하지 않은 마음은 몇 가지 남아 있다. 그래서 풍요롭고 여유롭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이 저녁이 끝나기 전에.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에. 그처럼 피아노든, 드럼이든, 첼로든, 이 음반에서 악기들은 저녁나무들의 친밀감으로 서 있다. 너무 멀지도 않게, 그렇다고 딱 붙은 것은 아닌, 적당한 거리감으로.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뜨거움의 기억, 다시 달콤해지리라는 기대, 이번에는 대담해지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의 흥분 같은 게 서로 뒤엉킨 관조의 저녁이라고나 할까.
내가 이 음반을 처음 들은 건 2010년 4월 10일 무렵이었다. 알다시피 2010년의 봄은 거의 없었던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겨울과 여름 사이, 운동을 잘 하는 형과 머리가 비상한 동생 사이에 낀 평범한 둘째 같은 봄이었다. “뭐야, 너도 거기 있었던 거야?”라고 물으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요”라고 말할 것 같은, 여드름투성이의 볼품없는 중학생 같은. 그런 봄에 이 음반을 들었는데, 뭐랄까, 꼭 여기에 실린 곡들이 그 볼품없는 중학생을 달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괜찮아. 힘을 내. 결국 겨울은 끝날 거야. 그런 느낌. 그러고도 (너무나 황당하게도) 4월에 눈이 내렸다. 2010년의 겨울은 길고도 끈질기고도 억셌다.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힘을 내. (‘이젠 낼 힘도 없어.’) 결국 겨울은 끝날 거야. (‘네 예상은 모두 빗나갔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결국 한 달이 지나갔다. 내가 가장 좋아한 곡은 ‘Blossom’이었다. 나는 그 곡을 듣고 또 들었다. ‘결국’ 겨울은 끝났다. 그 다음에는 ‘Daydream’을 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 볼품없는 중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은 날씨가 계속됐다. 짧았던 봄이 끝나고, 다시 뜨거운 햇살이…… 계절은 그렇게 왔다가 몽상처럼 다시…… 비는 내렸다가 그치고.
그리고 내게는 그 목소리가 남았다. 괜찮아. 힘을 내. 결국 겨울은 끝날 거야. 비 내리는 날이면 차창 유리창에 서리는 김의 하얀 무늬들처럼. 손가락을 뻗어 문지르면 금방 지워지겠지만, 어느 틈엔가 다시 서리고 마는 입김들처럼. 마치 그런 식으로 이 음반을 다 듣고 나면 “어느 틈엔가 저녁이 찾아 왔네”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 듣고 나면 악기들은 이제 꽤 친해진 것 같은데, 그건 모두 활달하면서도 침착한 피아노 덕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초조한 마음으로 관조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괜찮아. 힘을 내. 결국 겨울은 끝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여름도 가도 또 가을도 가겠지. 하지만 선율들은, 목소리들은 우리에게 하얀 무늬들처럼 남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점점 더 확실해지는 어떤 내성적인 저녁에 대한 기억처럼. 그 날의 서먹서먹한,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던 대화들처럼.